기도운동소개 2006.07.08 10:06
지난해 "무슬림을 위한 30일 기도운동"에 대한 소개가 CGNTV에 방영되었다. 올 해에도 기도를 통해 무슬림을 사랑으로 품는 기도운동이 더욱 활성화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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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는 글

* 무슬림을 위한 30일 기도운동 소개

* 이슬람 이해하기

* 이슬람력

* 무슬림에게 전도하기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주 일






10월5일
선지자와 왕

10월6일

무슬림의 기도

10월7일
무슬림의

돈과 구제

10월8일
예멘의

여인들


10월9일
이란 사람

10월10일
핍박과 위로

10월11일
걸프 만의
주요도시

10월12일
이집트의

집시

10월13일
세네갈의

레부 사람

10월14일
알제리의

므자브 사람

10월15일

케냐


10월16일
차드의 수도 은자메나

10월17일
서아프리카의  투아레그 사람

10월18일
서아프리카의 송가이 사람

10월19일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

10월20일
아체 낭그로 다루살람

(메카의 현관)

10월21일
인도네시아의 순다 사람

10월22일
인도 보팔의 무슬림

10월23일
방갈로르의 무슬림

10월24일
파키스탄의
역사적 도시 라호르

10월25일
인도 오리싸 주의 무슬림

10월26일
인도의

무슬림 도시

사하란푸르

10월27일
키르기스스탄

10월28일
중앙아시아의둔간사람


10월29일
중국의
위그루 사람

10월30일
권능의 밤

10월31일
네덜란드의 무슬림 청년

11월1일
불가리아의 밀레 사람과 루멜리안

투르크 사람

11월2일
변화에 직면해 있는

알바니아

11월3일
미국의 무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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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무슬림 인구에 대한 정확한 통계 자료는 없다. 단지 2백만~7백만 명(미국 인구의 1~2%)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무슬림 인구는 분명히 증가하고 있다. 2001년까지 1,200여 개이던 회교 사원의 수가 현재 1,500개를 넘고 있다. 하트포드 조사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의 무슬림은 그 배경이 무척 다양하다. 25%만이 아랍 국가 출신이고 30%는 미국 태생의 흑인이며 33%는 남아시아인(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이라고 한다. 나머지 12%는 그 외 여러 지역 출신이다.

회교 사원이 많은 곳은 캘리포니아, 뉴욕, 뉴저지, 미시간 주이다. 이제는 인구 2만5천 명 정도의 미국 지방도시에서도 회교 사원을 볼 수 있다. 불과 25년 전만 해도 볼 수 없었던 광경이다. 2004년에 미시간 주의 디어본에 북미 대륙에서 가장 큰 이슬람 센터가 세워졌다. 디어본은 디트로이트 옆에 있으며 주거 인구는 10만 명이다. 이슬람 센터의 규모는 3,370평이고 자금은 1,200만 달러가 들었다. 디트로이트 지역에만도 회교 사원이 30개가 넘는다.

몇 년 전, 세계적 요식업체인 맥도날드사가 신문 전면에 광고를 냈다. 디어본 지역에서 닭고기 맥너겟을 ‘할랄’ 고기로만 만든다는 내용이었다. 할랄이란 이슬람의 율법에 따라 ‘알라의 이름으로’라고 기도한 후에 도살한 고기를 말한다. 아울러 맥도날드사는 할랄 맥너겟을 그 지역의 다른 음식점에까지 공급하고 있다. 아직은 이것이 전국적인 추세는 아니지만 미국에서 이슬람의 영향을 여실히 보여주는 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2004년 9월 10일에 발간한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지에 실린 기사를 보면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사는 무슬림이 최소한 20만 명이 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중 아프가니스탄 사람이 1만2천 명, 이란 사람이 3만2천 명, 파키스탄 사람이 6천 명이다. 샌프란시스코의 무슬림 인구가 단 20년 만에 놀랍게 급증했다. “이러한 추세로 인해 사우스베이와 이스트베이 지역에서는 음식점과 서점 등 이슬람식 상점이 속속 생겨났으며 무슬림이 경영하는 음식점과 상점이 너무 많이 생겨나서 1999년에는 ‘zabihah.com’이라는 웹사이트를 만들어 자세한 안내를 할 정도가 되었다.”

2001년 9월 11일에 일어난 참혹한 사건과, 뒤따라 일어난 아프가니스탄, 이란 사태로 인해 무슬림에 대한 미국인의 시각이 상당히 바뀐 것은 사실이다. 무슬림은 미국의 작은 마을에 정착해서 살기 때문에 이들 간에는 긴밀한 대인 관계와 접촉이 가능하다.

기도 제목

* 미국의 그리스도인이 무슬림을 더 깊이 이해하고, 이슬람에 대한 두려움과 편견을 극복하도록 기도하자. 성경이 말하는 ‘이웃’의 의미를 그들이 깨닫고, 성경적인 견해와 태도를 갖도록 기도하자.

* 미국의 그리스도인은 인내와 사랑으로 무슬림에게 전도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무슬림의 사고와 생활을 이해하는 사역자로 준비되도록 기도하자.

* 더 많은 사역자가 무슬림의 복음화에 헌신하고 그들에게 가서 전도하는 가운데 개종자들이 함께 모여 예배할 수 있는 교회가 세워지도록 기도하자. 현재 미국 교회 중에 이러한 사역을 수행하는 교회들이 있다.

* 미국과의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무슬림 개종자들이 미국 교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미국 교회의 사역자들이 지혜를 얻도록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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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354만5천 명(2004년 7월 통계)

1991년에 국립경기장의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베니는 자신이 공산화 이후 알바니아 최초의 기독교 세대가 되리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무신국(無神國)임을 선포한 1967년 이래 알바니아는 세계에서 가장 복음이 들어가기 어려운 지역으로 꼽혔다. 공산당 초대 원수였던 엔버 호자의 무자비한 독재 정권 밑에서 알바니아는 종교 탄압의 희생물이 되었고 무려 7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투옥되거나 처형당했다. 동유럽의 공산주의가 차례로 무너져 내리던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알바니아는 다시 복음에 문을 열기 시작했다.

알바니아 수도인 티라나의 국립경기장에서는 역사상 최초의 기독교 전도 집회가 열렸다. 바로 그 곳에서 베니는 주님을 만났다. 당시 알바니아에는 교회가 전무한 상태였으나 불과 수년 만에 대부분의 대도시와 마을에 교회가 들어섰다. 바야흐로 나라 전체에 진리의 씨가 싹을 틔운 것이다.

알바니아 인구의 70%는 무슬림이지만 정작 이슬람 신앙을 따라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더불어 알바니아에는 가톨릭 교인과 정교회 교인도 많이 있는데 이들이 갖는 믿음의 깊이와 신앙 생활의 양상은 매우 다양하다. 1990년에는 개신교 교인의 숫자가 한 손으로 꼽을 정도였지만 현재는 0.25%에 이르는 2만 명으로 늘어났다. 다른 이슬람 국가에서 보듯 알바니아 사람들이 실제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물질적인 번영이다. 고소득을 올려 잘사는 것이 일반인이 생각하는 축복의 개념이다. 종교란 그러한 복을 얻는 수단으로 간주될 뿐이다. 이들은 ‘하나님은 똑같다’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어떤 종교든 결국은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인격적 관계를 맺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이들은 전혀 모른다.

이러한 장벽에도 불구하고 알바니아의 그리스도인은 언젠가 하나님이 알바니아를 기독교 아랍 국가로 만드시고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현재 이 지역의 교회와 외국 선교단체 간에 긴밀한 협조와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것을 보면 알바니아 복음화의 전망이 매우 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도 제목

* 알바니아의 무슬림에게 전도의 기회가 활짝 열리도록 기도하자. 알바니아 전역에 부흥의 물결이 일어나게 하소서!

* 공산화 이후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이 성경의 진리를 삶 속에 적용하여 증인된 삶을 살도록 기도하자.

* 직장에서 가정까지 사회의 각 영역에 하나님의 나라가 증거 되도록 기도하자. 부패, 낙태, 마약, 범죄, 물질주의, 가정 폭력 등의 사회 문제를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사역들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자.

* 알바니아가 위치한 발칸반도는 예로부터 종교 집단과 종족들 간의 분쟁이 끊이지 않던 곳이다. 알바니아의 교회가 이러한 역사의 고리를 끊고 용서와 화해의 밑거름이 되도록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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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밀레 사람-30만 명

루멜리안 투르크 사람-70만 명

어느 날, 노라라고 하는 무슬림 여인이 선교사에게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에게 실망했어요. 다른 마을은 전부 찾아가면서 왜 우리 집에는 한번도 들르지 않죠? 가끔 우리 집 근처에서 다른 사람들과 얘기도 하면서 말이죠. 잘 보세요, 저기에 있는 하얀 집이 바로 우리 집이에요.”

다음날 노라는 그녀의 집을 방문한 선교사에게 선지자 예수에 대해 진심으로 알고 싶다고 말하며 선교사를 깜짝 놀라게 했다. 노라는 선교사가 준 터키어 신약성경을 꾸준히 읽었다. 또한 자신의 가족들에게도 성경을 읽어주었을 뿐 아니라 ‘선지자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리게 되었다. 몇 달이 흐른 어느 날, 노라는 질병을 막으려고 항상 몸에 지니던 부적이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공교롭게도 몇 주 후에 그 부적을 잃어버렸는데, 노라는 그 때 예수님이 선지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세주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자신의 문제와 걱정을 모두 맡기고 신뢰하기로 결정했다.

밀레 종족인 노라는 터키어를 사용하는 집시이다. 불가리아의 총 인구는 820만 명인데 그 중에서 무슬림은 약 1백만 명 정도다. 터키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무슬림 중에는 오스만리, 혹은 루멜리안 투르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불가리아의 국교는 71%의 그리스도인을 갖고 있는 동방정교회이고 두 번째로 큰 종교 집단은 12%의 사람들이 믿고 있는 이슬람이다.

1990년대에 밀레 무슬림은 1만 명이, 루멜리안 투르크 무슬림은 단지 1백 명만이 주님을 영접했다. 불가리아에서 매년 열리고 있는 각종 기념 행사 때마다 밀레 무슬림과 다른 무슬림들 간에 긴장감이 감도는데, 이로 인해 불가리아의 그리스도인과 밀레의 개종자들이 루멜리안 투르크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 어렵다.

현재 루멜리안 투르크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사역들이 진행되고 있으며 밀레 개종자들을 훈련하여 밀레인 교회뿐 아니라 루멜리안 투르크인들의 교회를 개척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러나 복음에 마음을 여는 사람들은 밀레 사람들뿐이다. 루멜리안 투르크 사람들은 이슬람 사회의 압력이 더 강하기 때문에 좀처럼 그 세력을 벗어나기가 힘들다.

45년간의 공산주의를 마감하고 불가리아는 1989년에 민주주의 공화국이 되었지만 총 인구의 절반이 빈곤층으로 경제와 사회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기도 제목

* 불가리아의 경제와 사회가 발전하도록, 또한 실업률이 줄어들도록 기도하자.

* 종족들 간에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도록 기도하자.

* 밀레 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장과 훈련을 위해, 가정 교회의 증가를 위해 기도하자(행 2:42-47).

* 루멜리안 투르크 사람이 예수님을 알게 되고 구세주로 영접할 용기와 결단력을 갖게 되도록 기도하자.

* 무슬림이 미신과 무속 신앙의 굴레에서 벗어나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자유와 사랑을 발견하도록 기도하자.

* 전도, 서적, 음악, 라디오, 텔레비전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효과적으로 전파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행 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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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mission’(무슬림 여인의 복종)이라는 영화를 만든 네덜란드인 영화 제작자 테오 반 고호는 무슬림의 거센 반발을 받았고 급기야는 2004년 11월에 살해되었다. 이 사건으로 네덜란드에서는 무슬림 근본주의를 배격하는 문제를 놓고 무슬림과 비무슬림 간에 심각한 논쟁이 벌어졌다. 사실 이 둘 사이의 논쟁은 5년 전 사건을 통해서 벌써 시작되었다. 당시까지 네덜란드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네덜란드가 다문화와 다종교를 지향하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무슬림 이민자들의 2세와 3세 자녀들이 이러한 진보적 사상을 비난하고 나서자 사회적인 분위기가 변하고 말았다. 일부 무슬림 청년들이 이슬람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행하던 과격한 행동으로 인해 다른 무슬림 청년들은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터키에서 건너왔고 그들은 대부분 그동안 네덜란드 사회에 잘 적응해서 살아왔다. 개중에는 환멸을 느껴 터키로 돌아간 사람도 있지만 그들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무슬림 청년과 그리스도인 간의 간격이 최근까지도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네덜란드 교회는 이슬람의 영향이 커지고 있음을 인식하지만 막상 주변의 무슬림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한 가닥 희망은 네덜란드에서 자라나는 신세대 청년들이 그들의 부모보다 이슬람의 신조와 가르침을 훨씬 더 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터키와 모로코에서 이주한 부모 세대는 주로 작은 마을에서 살면서 이맘(이슬람의 종교 지도자-역주)의 가르침을 따라 대를 이어 이슬람을 믿어온 사람들이다. 한편 네덜란드에 온 청년들은 다양한 이슬람 형태를 접해 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과격한 지하드 운동에 가담하도록 촉구하는 이맘이 있는가 하면 신비적이거나 인본주의 성향의 이슬람도 대하게 된다. 사회로부터 가해지는 압력 때문에 무슬림 청년들은 어떤 것이든 스스로의 신앙 형태를 선택해야 한다. 많은 청년은 인터넷을 이용하거나 회교 사원 밖에서의 모임을 만드는 등 자신이 선호하는 형태의 이슬람 신앙 생활을 하기도 한다.

지금 네덜란드 교회가 갖고 있는 숙제는 이러한 무슬림 2세와 3세 청년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도록 돕는 일이다. 무슬림 청년들에게 전도하는 교회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네덜란드의 그리스도인은 단 40년 만에 이슬람의 교세가 그토록 깊이 자신의 나라에 뿌리내린 것을 한탄하고 있다. 그러나 한탄하기에 앞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담대함과 사랑과 지혜를 갖고 이들에게 다가서는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기도 제목


* 네덜란드의 무슬림 청년들이 정치계의 조종자들에 의해 과격한 이슬람 운동에 휘말리지 않도록 기도하자.

* 갈등하고 방황하는 무슬림 청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도록 해 달라고 기도하자. 북아프리카 출신의 성 어거스틴이 자신의 정체성을 극복한 일이, 네덜란드에 사는 무슬림 청년들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나도록 기도하자.

* 무슬림 청년들이 자신을 창조한 창조주이며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알게 되도록 기도하자.

* 네덜란드의 교회가 지혜와 인내로 무슬림 청년들에게 주님을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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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의 밤

코란의 ‘수라트 97’

헤지라 이전에 계시 받은 것.

‘수라트 97’은 5절로 되어 있음.

“가장 은혜롭고 가장 자비로운 알라의 이름으로,

1. 우리는 이 계시를 권능의 밤에 받았도다

2. 권능의 밤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3. 권능의 밤이 수천 개월의 세월보다 낫도다

4. 알라의 허락을 받아 천사와 영(靈)이 사명을 수행하러 내려오노라

5. 평화가 임할지어다!… 새벽이 도래할 때까지!”

아랍어로는 ‘레이라트 알 카드르’(Laylat ul-Qadr)라고 ‘권능의 밤’은 무슬림에게 그 해의 매우 중요한 날이다. 무슬림은 천사들이 하늘에서 특별한 임무를 받아 이 땅에 내려온다고 믿는다. 알라를 경배하거나, 무슬림의 간구를 받아가기도 하는데, 특별한 천사는 새로운 해가 왔음을 공표하는 사명을 띠기도 한다. 그래서 ‘운명의 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무함마드가 처음으로 코란을 계시받은 때라고 믿기 때문에, 축복을 받는 밤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루가 아니라 며칠에 걸쳐 계시를 받았을 것으로 추측한다. 무함마드의 동료였던 부카리는 “무함마드가 라마단 월의 마지막 열흘간 짝수일 밤마다 간구했다”라고 전한다. 하디스에 나오는 우바이 빈 카아브 무함마드는 이렇게 말했다. “알라로 인해 나는 권능의 밤이 어느 날인지를 알고 있다. 하늘의 천사가 우리에게 27일째 되는 밤을 기억하라고 명령했다.”그렇지만 정확히 언제인지는 여전히 의문에 속한다. 진지하게 알라의 축복을 구하는 무슬림은 밤새도록 기도하며 정확한 축복의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이슬람에서는 밤을 새면서 권능의 밤에 축복과 용서를 간구하라고 가르친다. 이 날에는 알라가 그들의 기도를 들어줄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것이다. 그들은 무함마드가 이렇게 말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권능의 밤에 보상을 기대하며 믿음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과거의 모든 죄를 용서받을 것이다.”

종종 알라에게 기도하면서 코란을 읊거나, 한 해를 돌아보고 다음해의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개중에는 직장을 쉬고 밤새워 모스크에서 기도하는 무슬림도 있다.

권능의 밤을 맞이하는 무슬림의 태도와 기대는 다양하다. 기도를 열심히 해서 알라에 대한 헌신을 증명해 보이려 하거나, 그동안 해온 신앙 생활과 업적에 스스로 자긍심을 느낀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해도 진정으로 알라를 기쁘게 할 수 없다는 자책감에 좌절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무슬림은 이 날 밤에 특정한 기도 제목을 놓고 알라의 도움을 요청하며 간절히 기도한다.

라마단은 실제로 10월 4일 저녁부터 시작되는 것이므로, 비록 이 날이 26일째가 되는 날이라 하더라도 저녁부터는 다음날인 27일째가 된다. (5쪽에 나온 날짜 주기를 참고로, 유대인의 전통에서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했던 것을 생각하라.)

기도 제목

구체적으로 기도하라.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먼저 하나님께 물어보라. 권능의 밤에 기도하는 무슬림은 아이를 갖게 해 달라거나, 직장을 구하게 해 달라거나, 가정 문제 해결 혹은 질병의 치료 등 매우 특정한 기도 제목을 놓고 알라에게 간구한다.

우리도 다음과 같은 기도를 드려보자.

* 오늘 밤 제 마음에 무슬림을 향한 사랑을 부어주소서. 주님은 고아의 아버지이시고, 겸손하시고, 참회하는 사람을 가까이 하는 분이십니다(사 51:17, 57:17, 66:2).

* 주님, 권능의 밤에 기도하는 무슬림에게 종교적인 행위로 의롭게 되지 못함을 깨닫게 해주옵소서.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자신을 낮추고 참회하게 하옵소서(단 4:37).

* 주님, 당신의 성품과 행하신 위대한 일을 찬양하며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이 권능의 밤에 역사하시어 무슬림에게 예수님이 구세주이심을 계시하여 주옵소서.

* 주님, 이 날 밤에 전심으로 간구하는 무슬림을 기억하옵소서. 그들을 도와주시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세주시며 우리를 돕는 분이심을 깨닫게 해주옵소서.


코란에 대한 참고 사항


위에 인용한 ‘수라트 97’은 코란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리스도인이 코란을 읽는 것은 금기사항이 아니지만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이슬람 신앙은 거짓의 아비인 사탄이 진리를 가장해서 만든 종교이기 때문이다.

코란의 각 장은 “가장 은혜롭고 가장 자비로운 알라의 이름으로”라는 어구로 시작한다. 성경의 하나님에 대한 묘사와 비슷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다. 이슬람에서는 은혜를, 인간이 노력과 행위를 통해 ‘얻어야 하는 것’이라고 한다. 즉 종교적인 행위로 은혜와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알라는 무슬림에게만 자비를 베풀며, 죄인을 사랑하지 않는다.

이슬람은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는 무슬림만 은혜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메카에 있는 하람모스크에 가서 하루에 10만 번씩 기도문을 외워 55년 치의 기도를 한꺼번에 드리기도 한다. 그런 식의 열심을 통해 심판 날 유리한 쪽으로 저울을 기울게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확실한 구원의 길은 메카로 성지 순례를 다녀오는 것이다. 이처럼 무슬림은 종교적인 행위를 통해 용서와 구원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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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위그루 사람은 몽골에서 살던 사람들인데 1300년 전에 ‘실크로드’라고 하는 고대의 대상 무역로 주변으로 이주해서 현재까지 살고 있다. 약 1천만 명에 이르는 위그루 사람들은 중국의 북서쪽에 위치한 신쟝성에 거주하며 신쟝성에는 위그루 사람들 뿐 아니라 카자흐인, 키르기즈인, 몽골인, 우즈베키스탄인, 후이인, 중국인들도 살고 있다. 신쟝성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지역이 2km당 165만 명이 거주할 정도로 인구밀도가 높다. 1940년 이래로 엄청난 중국인들이 이 땅으로 이주해서 현재 인구의 33%를 차지한다. 위그루 사람들 중의 절반은 인근의 중앙아시아 지역과 파키스탄, 터키까지 분포해 있다.

지난 수 세기 동안 위그루 사람들은 다른 종족과 결혼하며 어울려 살았다. 그러면서 그들의 외모는 인도인, 우즈베키스탄인, 타지크인, 파쉬툰인과 많이 닮았다. 그들은 정령을 숭배했으며, 2세기에 인도에서 실크로드를 따라 불교가 전해지자 불교를 숭상하게 되었다. 이슬람은 7세기경에 무역을 통해 전해졌고 8세기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슬람을 믿었다.

위그루 사람들은 사회적, 종교적 특징에 따라 다음 세 개의 부류로 나누어진다.

* 가장 학식이 높은 사람들-공직이나 정치계에서 높은 직위를 갖고 있다. 무신론적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지만 이슬람 신앙을 따라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다.

* 정통 이슬람을 고수하는 사람들-이슬람 개혁운동에 연류되거나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교인 와하비즘을 선호하며 이슬람의 샤리아 법을 따르기를 희망하고 있다.

* 농업, 상업, 공예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위그루 사람들- 정령 숭배와 불교가 혼합된 민속이슬람을 믿으며 병 고침·다산(多産)·악귀 쫓음·복을 받고 싶은 사람들이 미신적 방법을 따르고 있다.

7세기 초에 네스토리우스 교도가 타림 분지에 와서 기독교를 전했다는 얘기가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 19세기에 러시아 사람이 그리스 정교회를, 예수회 수사가 가톨릭을 전했으나 개종자를 얻지는 못했다. 1930년대에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이 죽임을 당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중국내지선교회가 우루무치에서, 스웨덴 선교회가 카슈가르에서 고아원과 의료사역을 하며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현재 중국에 약 50명, 카자흐스탄에는 4백여 명의 그리스도인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39년에 위그루 언어로 번역된 성경을 재번역하고 있다. ‘예수’영화도 상영하고 있으며 점차로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 위그루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기도 제목


* 더 많은 위그루 사람에게 ‘예수’영화를 상영하고 성경을 배포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롬 10:17).

* 중국 교회가 위그루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

* 위그루의 그리스도인을 보호해 주시고 능력을 주시어 자신의 종족 사람들에게 믿음의 증거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살후 2:17, 3:3).

* 개종한 위그루 청년들이 믿음의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창 24: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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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11만 명(1999년 통계)

둔간 종족은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의 3개국에 흩어져 살고 있다. ‘후이’의 후예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스스로를 ‘후이쭈(回族)’라고 부르는 그들은 중국에서 가장 큰 무슬림 종족이다. 그들은 1867년에서 1881년 사이에 일으킨 반란에서 실패한 톈산 산맥을 넘어 중앙아시아로 건너갔다.

아즈딘(가명)은 1990년 중반에 최초로 둔간의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러시아 학교에 다니면서 친구를 통해 주님을 알게 되었지만, 개종했다는 이유로 가족들로부터 1년간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의 부모 또한 이웃에게 갖은 수모를 당해야 했다. 후에 아즈딘의 어머니는 “그 기간에 제 머리가 온통 하얗게 세어버렸습니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아즈딘의 신앙은 흔들리지 않았고 결국은 마을로 돌아갈 수 있었다.

몇 년 후, 아즈딘은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도시로 왔다. 그는 믿음도 더욱 자랐고 주님을 섬기는 중에 아내도 만났다. 아즈딘의 여동생도 주님을 영접했으나 부모에게는 그 사실을 말하지 않은 채 아즈딘이 사는 도시로 와서 학교에 다니며 오빠와 함께 교회에 다녔다.

결혼 후, 아즈딘의 아내는 첫아기를 출산한 지 몇 주 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이의 양육을 맡게 된 아즈딘의 어머니는 부적을 사용하는 등 무슬림 방식을 썼다. 아즈딘의 여동생은 개종 사실을 숨기다가 결국 더이상 교회를 나가지 않게 되었고, 2002년에는 무슬림 남자와 결혼했다. 그 뒤 아즈딘은 직업을 구하기 위해 유럽으로 건너갔고 그 곳에서 재혼하여 딸을 낳았으나 급여가 적어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는 형편이다. 현재 그의 믿음은 흔들리고 있지만 자비의 하나님이 그에게 소망을 주실 것이라고 믿는다.

둔간 종족 중 중앙아시아에 사는 그리스도인은 약 50명 정도다. 아즈딘의 고향에서는 온갖 박해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 모임을 갖고 있지만,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모국어로 기도하거나 예배드리지 않는다. 현재 이들의 모국어로 번역된 성경은 마태복음뿐이다. 둔간의 그리스도인뿐 아니라 이 지역에서 사역하는 외국인 선교사들도 몰매를 맞거나, 관절염 혹은 뇌종양 등의 건강 문제, 가정 문제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무엇보다도 친족이 주는 압력이 둔간의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둔간 사람 가운데 영적인 추수가 일어나길 기도하자.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와 육십 배와 백배가 되었느니라”(막 4:8). 하나님에게 불가능한 일이란 없다!

기도 제목

* 둔간의 그리스도인 사이에 연합과 강한 우정과 화해가 있도록 기도하자.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둔간의 그리스도인이 한마음이 되어 서로를 위로하고 용기를 줄 수 있도록 기도하자(딤후 1:7, 행 4:29).

* 둔간 사람들의 언어로 성경이 번역되도록 기도하자(시 67:3).

* 외부의 사역자들이 더 많이 둔간 사람이 사는 마을에 들어가서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문화를 이해하며 그들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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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보다 면적이 약간 좁은 키르기스스탄은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이고 7%만이 농경지다. 총 인구 500만 명 중 65%가 그 곳의 토착민인 키르기스인이다. 키르기스인은 중국(30만 명)과, 또한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15만 명)에도 살고 있다. 키르기스인의 40%를 차지하는 14세 미만의 어린이들은 대부분 문맹이다. 수도인 비슈케크는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도시이다.

13세기에는 몽골제국, 1800년에는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고, 1937년 이후에는 키르기스 소련 공화국으로 불렸다. 스탈린이 집권하던 시기에 집단농장 체제가 도입되었다. 이 때 거세게 반발하던 키르기스 유목민이 무자비한 공권력 앞에서 강제로 집단농장에 배치되거나 중국으로 유배되었으며 죽임을 당했다. 1991년에 독립한 키르기스스탄은 민주주의 형태의 정부개혁과 시장경제로의 변환을 단행했다. 그러나 경제 불안과 공유화 농장의 쇠퇴가 잇달았다. 아울러 많은 키르기스인이 전통적인 생활 방식으로 돌아가서 유목 생활을 하며 양이나 말을 키우고 ‘유르트’라는 천막에서 살아가고 있다.

키르기스인들은 이야기하기를 좋아하고 차를 즐겨 마신다. 결혼식과 장례식은 매우 성대하게 치르는데 때로는 그로 인해 재산 파탄을 맞이한다. 고정 직업을 갖고 일하는 사람은 드물고, 교사나 의료직 종사자조차 임금이 낮은 다른 직종으로 이동하고 있는 실정이다.

17세기에 전해진 이슬람이 공식 종교가 되었지만 실상은 정령 숭배 사상이 혼합되었다. ‘키르기스인은 곧 무슬림’이라고 할 정도로 이슬람과 밀접하고 대부분의 마을에 회교 사원과 기도실이 세워져 있다. 코란을 가르치는 학교에 자녀들을 보내는 부모가 늘어나고 있으며 공립학교에서도 이슬람 교육을 시킨다. 키르기스인의 ‘기독교’에 대한 기억은 자신들을 억압했던 러시아의 정교회와 맞물려 있는 것은 참으로 불행이다.

하나님은 키르기스스탄에서 그분의 나라를 확장하고 계시다. 비슈케크를 비롯한 대도시에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인 모임도 많아졌다. 현재 키르기스스탄에는 대략 5천~6천 명의 그리스도인이 있다고 추정된다. 반면에 시골 지역에서는 가족이나 어른들이 개종하는 사람에게 상당한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직업을 구하지 못해 실업률이 높지만, 개중에는 이웃에게 전도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있다. 소규모의 성경학교와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사역자를 양성하는 중이며 키르기스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일도 완료되었고 비슈케크에는 기독교 서점도 한 곳 들어섰다. 키르기스의 그리스도인을 상담하고 양육할 사역자가 많이 필요한 실정이다.

기도 제목


* 그리스도인이 고정된 직업을 구하여 믿지 않는 사람에게 간증이 되고 교회도 재정적으로 독립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살전 4:10-12).

* 현재 이 땅에서 가장 필요한 사역은 제자화 훈련과 지도자 양성, 기독교 서적과 훈련 교재 제작과 배포이다. 이러한 사역이 활성화되고 키르기스스탄의 교회들이 성장하도록 기도하자.

* 시골 지역에서 외롭게 신앙 생활을 하는 개종자들을 위해 기도하자(히 10: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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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미르는 갓 짠 우유를 싣고 달리는 인력거, 손으로 만든 목공품을 잔뜩 얹은 소달구지, 오토바이 등과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를 잰 걸음으로 걸었다. 이 지역 태생이 아닌 사람은 하수구 구멍이 양쪽에 널려있고 세 명이 겨우 다닐만한 좁은 길을 그토록 솜씨 좋게 곡예를 하듯 빠져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부르카라는 검은 베일로 온 몸을 감싼 여인들을 지나쳐 집에 도착하자마자 싸미르는 재빨리 물건들을 챙겨 코란을 가르치는 마드라싸(‘학교’라는 뜻의 아랍어-역주)로 달려갔다. 선생 앞에서 자신이 암기한 아랍어 코란의 한 대목을 읊어야 하지만 사실은 싸미르도 자신이 암기한 내용이 무슨 뜻인지는 알지 못하고 있다.

인구가 1백만 명인 우타르 프라데쉬 주의 사하란푸르(델리에서 북쪽으로 140km 떨어진 지역)는 대규모 무슬림 부락(그 도시 인구의 45%가 무슬림임)과, 손으로 깎아 만든 목공품이 유명하다. 무슬림이 사는 구역과 힌두교도가 사는 구역은 엄밀히 구별되어 있다. 상업 중심 도시이기 때문에 서로의 유익을 위해 두 종교 집단 간의 분쟁은 가급적 회피한다.

무슬림 지역에 가면 곳곳에 목공품을 파는 가게들이 눈에 띈다. 미로 같은 골목길을 누비다보면 거의 세 집 건너 한 집은 목공품을 만드는 공장이다. 사하란푸르의 뒷골목, 어스름한 불빛 밑에서 제작하여 외국으로 수출하는 목공품은 해마다 수백만 달러에 이른다.

이 도시의 이름은 수피교의 성자였던 사하룬 치스티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그는 평생을 검소하게 살며 알라의 가르침을 설파한 무슬림 성자다. 이러한 이슬람 유산과 정신이 깊이 스며들어 있는 사하란푸르에는 회교 사원만도 5백여 개에 이른다. 수니파 무슬림이 대부분이지만 민속이슬람이 혼합된 신앙 생활을 한다. 그들은 알라로부터 지혜를 받았다고 알려진 소위 ‘성자’들을 찾아가 질병, 불임, 재정 문제를 상의하고 해결 받는다. 또한 이러한 성자들은 무슬림 마을의 신앙과 전통을 지키고 유지하려 노력한다.

사하란푸르의 무슬림 지역에는 교회가 단 한 개도 없는 반면 힌두교도 지역에는 소수의 교회가 있다. 현재 무슬림에게 전도하려는 그리스도인은 별로 없다. 힌두교도가 쉽게 이해하고 흥미를 갖는 풍습과 언어를 이용해 복음을 전하면 무슬림은 불쾌감을 느낀다. 최근 몇 명의 그리스도인 사역자들이 이 도시에 사는 무슬림에게 전도하려는 열정을 품고서 무슬림의 마음을 열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모색 중이며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그들 가운데 이루어지도록 노력하고 있다.

기도 제목

* 마음의 문을 닫고 있는 무슬림에게 다가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려는 사하란푸르의 사역자들을 위해 기도하자.

* 힌두 지역에 세워진 교회가 용기와 결단력으로 무슬림 이웃에게 전도하도록 기도하자(사 6:8).

* 소위 ‘성자’라고 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문제를 해결하려는 무슬림이 주님을 찾아오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행 19: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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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오리싸 주는 고대에 강력한 독립국이었고 멀리 있는 많은 나라들과 활발하게 무역했으며 패배를 몰랐던 카링가 왕국이었다. 오리싸를 침략하기 위한 무슬림 군대의 공격이 거의 실패를 거듭했지만, 1568년에 아프가니스탄의 장군인 술라이만 카라니만이 카링가 왕국 점령에 성공한다. 그 이후 오리싸는 무굴제국의 통치 하에 들어갔고, 18세기 중반에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2백 년간 무슬림의 지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리싸에는 이슬람이 빠르게 전파되지 못했고 현재는 4천만 명의 오리싸 인구 중에서 단 3%에 해당하는 1백만 명이 무슬림이다. 벵골에 최초로 무슬림이 발을 디딘 것은 1400년경이었다. 지금까지 벵골어를 말하는 무슬림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우르두어를 사용한다.

오리싸의 무슬림은 농부이거나 가난한 노동자이고 다른 지역에 비해 교육 수준이 낮고 발전도 저조하다. 오리싸에서는 힌두 과격분자들이 무슬림과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기독교 선교사였던 그래함 스테인즈와 그의 아들들을 살해한 다라 싱이라는 사람은 같은 지역에서 무슬림 한 명을 살해한 죄로도 기소되었다. 외부의 위협이 무슬림을 극단적인 행동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최근에 바드라크라는 마을에서는 한 무슬림 남자가 무슬림의 법을 어기고 술에 취한 상태로 아내에게 이혼을 선언했다가 술이 깬 후에 이혼한 것을 후회했지만 그 마을의 무슬림 지도자들은 이혼 선언을 무효화할 수 없다고 확정했다. 바드라크에 사는 다른 무슬림도 그에게 지도자의 결정을 따르라고 강요했다.

또 다른 극단적인 모습은, 오리싸의 무슬림이 남아시아의 경우처럼 강력한 민속이슬람의 영향권에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동 인도와 방글라데시에는 무함마드 선지자의 발자국이 보관되었다고 알려져 있는 콰담이라술 신전이 여러 마을에 있는데, 커타크 마을도 그 중 하나다. 무슬림뿐 아니라 힌두교도들도 이 신전을 매우 신성시한다. 심지어 오리싸의 수호신인 자가나스에게 바쳐지는 힌두교도의 축제 의식(현지어로 ‘라스 야트라’라고 함-역주)에 무슬림이 참여하고 있는 마을도 있다.

선교사들이 오리싸와 인근 마을에 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마을 개발 사역이나 문맹 퇴치 사역, 장사를 할 수 있도록 소자본을 대출해 주는 사역 등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사역들이 필요하다.

기도 제목

* 오리싸의 무슬림에게 꿈과 환상과 기적을 통해 하나님을 계시해 달라고 기도하자(행 10:1-44).

* 오리싸의 그리스도인이 무슬림에게 효과적이고 의미 있는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도록 기도하자.

* 오리싸에 오는 사역자들이 무슬림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도록 기도하자(행 11:20-21).

* 오리싸에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위험 속에서 보호해 주시도록 기도하자(살후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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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에서 매우 비옥한 지역으로 손꼽히는 펀자브를 가로지르는 라비 강변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도시가 라호르는 인구 6백만 명이 거주하는 파키스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다. 또한 은행과 상업의 중심지로써 주변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의 판로를 제공하고, 파키스탄 공산품의 20%를 생산하는 곳이기도 하다.

라호르의 낭만과 풍부한 문화유산으로 말미암아 파키스탄 사람들은 이 도시를 ‘파키스탄의 심장’이라고 부른다. 라호르에 대한 시, 융숭한 손님접대, 기막히게 맛있는 음식들은 라호르가 자랑하는 명물이다. 예전에 아나르칼리라는 이름의 노예소녀가 있었는데 왕자를 사랑했다는 죄목으로 산 채로 땅에 매장 당했다는 비극적인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이 이야기를 기념하여 라호르에서는 유명한 아나르칼리 시장이 열리고 있으며, 루디야드 키플링이 ‘킴’이라는 고전을 쓰기도 했다. 한편,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되던 1947년에는 라호르의 거리에서 힌두교도, 시크교도, 무슬림이 서로를 무자비하게 살상하는 끔찍한 참변이 일어나기도 했다.

라호르의 중심부에는 16세기 이전에 지어진 성벽으로 둘러싸인 구시가지가 있다. 오늘날 이 지역에는 순수한 라호르 혈통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이들은 자신들만의 고유 언어인 펀자브어를 말하며 문화적으로도 다른 종족과 구별된다. 이들의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아우랑제브 황제(1658-1707)가 다스리던 무굴제국 이전까지 조상의 발자취를 찾을 수 있다. 작은 부락 단위로 살아가는 라호르 사람은 전혀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미전도 종족이다.

약 1백 년 전인 20세기 초에 ‘기도하는 하이드’로 알려진 존 하이드가 라호르에 머무르며 부흥을 위해 기도했다. 그 후 신분이 낮은 계층의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오늘날 파키스탄에 세워진 교회들은 대부분 당시 부흥의 열매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교회들의 성도는 그 수가 적을 뿐 아니라 무슬림으로부터 철저히 격리되어 있다.

파키스탄에서 가장 큰 펀자브 주에는 파키스탄의 정치와 군사력의 실권을 쥔 사람이 많이 산다. 펀자브의 수도 라호르는 나라의 발전과 국민의 생활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또한 인도의 펀자브로 통하는 관문이기도 하다. 라호르의 도로와 철도, 항공로가 두 나라를 밀접히 연결해 준다. 오랫동안 숙적으로 지내온 인도와의 화해와 연합을 위해 파키스탄에서 역사, 경제, 정치, 종교적으로 매우 중요한 도시 라호르가 제대로 역할을 하도록 기도하자.

기도 제목

* 하나님의 나라가 라호르 도시의 각 영역에 세워지도록 기도하자(마 13:31-33).

* 무슬림은 대다수를 차지하는 반면, 개종자는 극소수다. 낮은 계층의 힌두교 사람뿐 아니라 무슬림에게도 영적인 각성이 일어나도록 기도하자(벧전 3:9).

* 라호르의 그리스도인이 박해와 위협 속에서 견고한 믿음과 사랑을 갖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살후 1:4).

* 능력과 인내를 갖춘 많은 사역자들이 라호르의 무슬림에게 들어가 빛과 소금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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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카르나타카 주의 수도인 방갈로르는 다양한 종족이 한데 어울려 사는 인구 650만 명의, 인도에서 네 번째로 큰 대도시다. 그 중 무슬림 인구는 88만9천 명이다. 이곳에는 서로 어울려 살아가며 결혼하는 무슬림 부락이 여러 개가 있다. 대부분의 무슬림은 우르두어를 사용하고 글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다국적 기업과 대학이 많이 세워져 있는 방갈로르는 인도 정보기술(IT) 산업의 중심지이다. 이러한 회사에서 일하거나 대학에서 공부하는 무슬림은 다른 종교와 배경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새로운 사고에 눈을 뜨기도 한다. 성경을 가르치는 기독교 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무슬림도 많다. 기독교 학교의 선생 중에는 무슬림 학생에게 성경을 주고 성경 말씀을 토론하는 사람도 있다.

방갈로르의 무슬림은 고소득층에서 빈곤층까지 다양한 생활 수준을 보이고 있다. 다국적 기업에서 책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구걸로 근근이 살아가는 거지도 있다. 또한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도 많아 어떤 구역은 무슬림이 운영하는 가게가 즐비하다.

최근 무슬림 지역에서 설문 조사를 했는데, 조사에 응한 대부분의 무슬림은 한번도 복음을 듣지 못했다. ‘이사(이슬람에서는 예수를 ‘이사’라고 발음함-역주)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부분은 모른다고 했으며, 안다고 해도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이사는 선지자이고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입니다.”

“이사의 가르침은 올바르고 교훈적입니다.”

“이사도 결국은 다른 선지자와 마찬가지이고 알라의 선지자일 뿐이에요.”

“이사는 이슬람의 알라와 같은 분입니다.”

“이사가 사람들을 위해 죽었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이나 이해할 수 있죠.”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겠는데요. 텔레비전에서 본 기억은 납니다.”

“이사는 거룩한 분이었죠.”

“이사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닙니다.”

또 다른 응답을 보면, 방갈로르 무슬림의 10% 미만이 코란에 대해 제대로 알고 이슬람 의식을 실천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절반 정도는 자신을 ‘자유사상가’라고 말하면서 기도와 금식을 지키지 않는다고 했다.

방갈로르에는 많은 교회와 200개가 넘은 선교단체가 있다. 그렇지만 무슬림들이 복음을 듣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애쓰는 것보다 효과가 미미하다. 방갈로르의 그리스도인은 무슬림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감히 전도할 용기를 내지 못하는데, 인도의 헌법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므로 무슬림에게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다.

기도 제목

* 그리스도인이 방갈로르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을 잘 이용하도록 기도하자.

* 하나님의 계시로, 무슬림들이 예수님이 왕이며 구원자이심을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요 20:26-29).

* 그리스도인에게 명확하고 효과적인 전도 전략을 주시어 무슬림 마을을 복음화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

* 그리스도인이 무슬림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갖고 이웃과 동료와 친구에게 전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

* 방갈로르 무슬림의 복음화를 위해 열정과 능력을 갖춘 사역지도자가 양성되도록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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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마드야 프라데쉬 주의 수도인 보팔은 그 도시를 설립한 ‘라자 보’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그런데 라자 보는 그 도시를 힌두의 시바 신에게 바쳤다고 한다. 11세기에는 댐이 건설되었다고 하는데 그 결과 보팔에는 세 개의 호수가 만들어졌다. 백 년이 넘는 동안 보팔에서는 여성 무슬림 통치자인 베감이 대대로 그 지역을 통치했다.

보팔은 도스트 무함마드 칸이라는 사람에 의해 현대적인 도시로 재탄생했다. 칸은 아프가니스탄의 족장이었다가 보팔의 지도자가 된 사람이다. 1707년, 무굴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아우랑제브가 죽고 나자 나라가 혼란해진 틈을 타서 세력을 잡은 칸은 스스로 작은 왕국을 형성했다. 보팔이 오랜 기간 이슬람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수많은 회교 사원과 무슬림 인구를 보면 알 수 있다. 보팔에서 사용하는 주요 언어는 힌디어와 우르두어이다.

1984년 12월 3일 이른 아침, 보팔에서는 세계 최악의 산업 재해로 알려진 사건이 일어났다. 농약을 만드는 공장에서 엄청난 독가스가 밖으로 유출된 것이다. 그 사건이 일어난 곳은 구시가였는데 그 곳은 주로 무슬림이 많이 사는 지역이었다. 대략 2만 명이 독가스에 중독되어 사망했고 수많은 사람이 불구가 되거나 재해를 입었다. 사고 이후에 따르는 질병과 후유증으로 최소한 10만 명에 이르는 사람이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한다.

보팔에 사는 180만 명의 인구 중 25%가 무슬림이다. 이 중 수니파 무슬림은 주로 구시가지에 모여 살며 대략 30만 명으로 추산된다. 대부분은 겨우 글을 읽는 정도이고 실업률도 상당히 높다. 보팔 시에는 300여 개에 이르는 빈민가가 형성되어 있다. 이들이 빈곤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유로는 낮은 교육 수준, 힌두교도와 무슬림 간의 차별 대우를 꼽을 수 있다. 무슬림은 공무원으로 취직하기가 극히 어렵다. 따라서 주로 상업, 공예, 소규모 가게를 운영하며 어렵게 살아간다. 무슬림 여인이 직업을 구하기는 더욱 힘들고 자라나는 무슬림 자녀들의 장래도 밝지 못하다. 힌두교도와 무슬림 간의 분쟁은 과거부터 심각한 문제였다. 현재 보팔시 당국은 소수파에 해당하는 무슬림의 안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보팔의 무슬림을 복음화하는 사역은 이제 시작 단계에 있다. 최근 한 그리스도인 부부가 보팔의 무슬림에게 전도하기 위해 이 지역으로 들어갔다. 무슬림 개종자인 이 부부를 위해 기도하자. 최근에 세 사람이 이들의 전도를 통해 세례를 받은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기도 제목

* 보팔의 그리스도인이 도시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도록 기도하자(렘 29:7).

* 그리스도인이 무슬림에게 과감히 예수의 사랑을 보여주고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도록 기도하자(행 28:30-31).

* 인도에 세워진 신학교들로 인해 감사하고 준비된 인도인 사역자들이 무슬림에게 들어가도록 기도하자.

* 보팔의 부흥을 위해 그 땅에서 불의, 착취, 부패, 범죄, 폭력 등의 사회 문제가 사라지도록 기도하자.

* 1984년 산업 재해로 인해 여전히 고통 당하는 무슬림들의 건강과 치유를 위해 기도하자.

* 보팔의 무슬림이 그 마음을 열어 하나님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행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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